백리호 가족, 남, 1920년생.
길림성 통화시 강전자향 동평촌 거주

나의 고향은 조선 이주인데 1939년에 안동(지금의 단동)을 거쳐 신빈현(新宾县) 사보탕(汕宝汤)으로 이주해왔다.

그때 나의 고향에는 인구가 많고 땅이 적어 살기 어려웠다.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지주가 이주에 와서 중국으로 가면 잘살수 있다고 하면서 갈 사람이 있으면 돈을 대주겠다 하기에 중국으로 들어왔다.

나는 조선에 있을 때 서당에 가 공부도 했고 계몽운동때 신학공부도 하였기에 중국에 들어와 처음에는 동포들이 꾸린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때는 일본지도관의 심열을 거치지 않고는 강단에 오르지 못했다. 왜놈들의 세상이였으니깐.

우리 집은 1947년에 강전자로 이사했다. 첫 3년 농사는 망하고말았다. 벼가 여물가 하면 서리가 내리고 했던것이다. 할수 없이 흥농합작사(兴农合作社) 림시직원으로 사사부(司事部)에서 일을 봤다. 그러다가 후에는 담배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지금도 담배를 팔때 생각이 난다. 담배를 팔기 전날 저녁에 일본사람을 데려다 한때 잘 먹이면 좋은 등수로 담배를 팔수 있었다. 담배농사를 해서 몇년 가던 빚을 다 물었다.

그 당시 친구들은 거개가 의용대에 참가했다. 그런데 나는 집에서 큰아들이라고 말리는통에 참가 못했다. 나는 그후 계속 교원노릇을 했다.

북경대학 김훈 정리

*글의 맞춤법과 표기는 원문 그대로 두었다. (굵은 글씨, 밑줄과 옮긴 이 주는 별도)

[연관글]

[자료] 북경대학 김경일 교수 반도문제 칼럼 모음(한겨레, 내일신문)

[조선족이민실록] 그 령감이 생전이므 좋은 얘기 많을겐데

[조선족이민실록] 001. 조봉학 가족(길림 훈춘)

[조선족이민실록] 002. 김정록 가족(길림 돈화)

[조선족이민실록] 003. 한희운 가족(길림 돈화)

[조선족이민실록] 004. 최헌순 가족(길림 화룡)

[조선족이민실록] 005. 엄동성 가족(길림 통화)

[조선족이민실록] 006. 박춘협 등 5인(도문 월청)

[조선족이민실록] 007. 권봉희 가족(안도 송강)

[조선족이민실록] 008. 리강철 가족 (도문시 월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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